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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여행 에세이] 잊을 수 없는 라면 한 그릇(in 호주 골드코스트)

by 지구라는 책 읽기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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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여행 한 달을 계기로, 여행을 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많은 돈이 필요하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해야만 하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여행에서, 적은 돈으로도 가능하고, 혼자서도 충분하며 계획 없이 떠나는 것이 더 재미있는 여행으로. 때마침, 나의 항공 아이디로 호주 내 도시에 다녀올 수 있을 만큼의 포인트가 쌓여 있었다. 호주 항공사였으므로, 지금 사용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영영 사용하지 못할 포인트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시드니를 떠나기 2주 전, 호주에서 혼자 골드코스트로 떠나보기로 했다. 나 홀로 첫 여행이, 50만 원이라는 적은 예산으로, 편도 티켓 하나 끊은 채 시작되었다.

골드코스트에서 첫 1박 2일은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지인 “바이런 베이”를 다녀오고, 남은 2일 동안 골드코스트 해변과 도심 야경을 즐기기로 했다. 시드니에서 살았던 8개월 덕분에 골드코스트의 교통과 음식 등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골드코스트는 시드니보다 작은 도시였기에 교통이 더 열악했다. 특히 “바이런 베이”는 1시간에 버스가 1대 다닐까 말까 하는 시골 동네였다. 버스를 놓칠까 노심초사했고, 이것저것 정보가 필요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순간에 주변 사람들의 감사한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사실 골드코스트에서의 나는 가난했다. 나는 학생이었고, 당시는 학기 말이었으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이 여행은 마일리지를 쓰기 위해 즉흥적으로 떠난 것이었다. 첫날의 저녁 식사는 5,000원짜리 피자를 먹었으며, 다음 날 아침으로는 먹고 남은 피자를 먹었다. 배고플 때 먹으니 사실 그마저도 정말 맛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는 감사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첫 번째로 “바이런 베이”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분들이다. 10명 정도 단체로 여행을 온 이 한국 분들은 워킹홀리데이를 왔다가 어학원을 함께 다니며 친해졌다고 했다. 단체로 자장면을 요리하셨는데, 요리가 완성된 후 같이 먹자며 나를 불러 주셨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며 함께 자장면을 먹었다. 골드코스트에서 먹은 자장면은 그리운 "고향의 맛", 그리고 감사한 “나눔의 정”의 맛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고민이 많았다. 먼저 돌아오는 비행기를 끊어야 했다. 항공권 검색 결과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가 가장 저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골드코스트의 밤은 즐기고 싶었으나, 하룻밤 더 숙소비를 내야 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 되던 상황이었다. 그래, 그럼 마지막 날은 클럽을 구경하며 밤을 새우고, 첫차를 타고 공항을 가서 비행기를 타자! 이렇게 나의 무모한 밤샘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곧 이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캐리어를 가지고 클럽을 갈 순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죄송함을 무릅쓰고 주변 가게에 캐리어를 맡길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주변에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24시간 라면집이 있었다. 사장님께 몇 시간 동안 캐리어를 맡길 수 있는지 여쭈어보자 조금 당황해하셨지만,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캐리어까지 처리하고 드디어 골드코스트의 클럽으로 입성!

하지만 막상 혼자서 간 클럽은, 처음에야 호주 사람들이 밤을 즐기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호주 사람들의 클럽 복장은 생각 이상으로 화려했다. 레드카펫에서나 볼 법한 드레스를 입고 온다) 이내 쓸쓸해졌다. 결국, 나는 몇 개의 클럽을 전전하다 캐리어를 맡아주신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라면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장님은 나의 사정을 들으시더니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쉬다 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또, 틈틈이 말을 걸어주셨으며, 라면 한 그릇을 끓여주셨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다. 지금껏 먹어본 라면 중 가장 따뜻한 라면이었다.


사실 골드코스트에서의 라면 이야기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가난했고, 무모했고, 어찌 보면 민폐가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렇게 감사한 배려를 받았음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 때를 생각하며 나 또한 훗날 라면집 사장님처럼 배려하는 여행가가 되자고 다짐한다.


춥고 배고픈 순간들도 있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버스를 놓칠까 동동거리기도 했지만 찬란한 야경을 즐기는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잘 곳과 먹을 것을 오로지 혼자 선택하며, 모든 선택의 결과에 내가 책임을 지는 여행이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의 힘으로 해내는 여행은 그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 여행. 그래서 별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한없이 뿌듯했던 여행. 어쨌건, 무사히 제시간에 돌아왔으므로, 그것으로 되었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불편하지만 즐거웠고, 조금은 힘들었지만, 많이 감사했던 골드코스트 여행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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